빌립보서 묵상 3-빌1:12-18 '바울의 당한 일'- 찬송가 264장
12절의 '나의 당한일'이란 로마 감옥에 바울이 갇힌 일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소망은 로마와 서바나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혔고, 호송되어 로마에 왔고, 감옥에 갇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복음전하는 일에 실패한 듯 하나-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복음을 감옥에서도 계속 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12절에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은 어떠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므로 복음사역이 위축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고백합니다. 구체적으로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십시다.
1)13절의 나의 매임(나의 당한 일이나 의미상 동일)이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기회가 됨.
2)나의 매임을 인하여 형제 중 다수가 겁없이 복음을 전하게 됨-어떤이는 투기와 분쟁으로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기 위해서 전했고, 또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바울이 감옥에 있으니 우리라도 더 복음을 전하자) 바울을 사랑해서 전했다.
3)그러나 무엇이든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습니다. 국경 근처에 사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비루 먹은 말 한마리가 국경을 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얻었다고 좋아했습니다. 노인은 돌려줄 수도 없고 해서 비루먹은 말을 열심히 키웠습니다. 말은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어느날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가다가 떨어져 다리가 다쳐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말때문에 아들이 다리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그 나라에 전쟁이 났습니다. 그 마을에도 장정들이 뽑혀 군대로 갔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마침 다리 불구자라 전쟁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아들의 친구들은 전쟁에서 죽거나 중상을 입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조금 불구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잘 살았습니다.
말 한마리 때문에 기쁨이 슬픔이 되고, 또 슬픔이 기쁨으로 변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생 새옹지마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쁜 일이 생길 수 있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 일어난 일의 결과만 가지고 인생 전체를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 전도에 진보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붙잡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생각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할렐루야!!
12절의 '나의 당한일'이란 로마 감옥에 바울이 갇힌 일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소망은 로마와 서바나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혔고, 호송되어 로마에 왔고, 감옥에 갇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복음전하는 일에 실패한 듯 하나-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복음을 감옥에서도 계속 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12절에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은 어떠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므로 복음사역이 위축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고백합니다. 구체적으로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십시다.
1)13절의 나의 매임(나의 당한 일이나 의미상 동일)이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기회가 됨.
2)나의 매임을 인하여 형제 중 다수가 겁없이 복음을 전하게 됨-어떤이는 투기와 분쟁으로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기 위해서 전했고, 또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바울이 감옥에 있으니 우리라도 더 복음을 전하자) 바울을 사랑해서 전했다.
3)그러나 무엇이든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습니다. 국경 근처에 사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비루 먹은 말 한마리가 국경을 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얻었다고 좋아했습니다. 노인은 돌려줄 수도 없고 해서 비루먹은 말을 열심히 키웠습니다. 말은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어느날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가다가 떨어져 다리가 다쳐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말때문에 아들이 다리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그 나라에 전쟁이 났습니다. 그 마을에도 장정들이 뽑혀 군대로 갔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마침 다리 불구자라 전쟁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아들의 친구들은 전쟁에서 죽거나 중상을 입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조금 불구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잘 살았습니다.
말 한마리 때문에 기쁨이 슬픔이 되고, 또 슬픔이 기쁨으로 변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생 새옹지마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쁜 일이 생길 수 있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 일어난 일의 결과만 가지고 인생 전체를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 전도에 진보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붙잡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생각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