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고백

[스크랩] [성경으로 돌아가자―성경 대탐구 (제2편) 정경화 작업 ④] 정경 확정 이전

이아기 2010. 8. 21. 22:55

[성경으로 돌아가자―성경 대탐구 (제2편) 정경화 작업 ④] 정경 확정 이전 초기 문서들 형식·내용 다양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신약성서 정경이 예수가 죽은 뒤 어느날, 그것도 갑자기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신약성서가 정경으로 확정되기 이전,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유포·회람됐던 문서들은 매우 다양하다. 이들 문서는 100년 이상 동안 정경화를 위한 치열한 논쟁을 거쳐 신약성서 27권에 포함됐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기독교 문서들을 살펴보는 일은 '잃어버린 원문' 혹은 '신약성서의 기원'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초기 기독교 문서(서신)=정경 이전 초기 문서들로서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 서신(편지)을 꼽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 최초의 서신 발송자였다. 그는 지중해 동쪽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다. 바울이 선교 대상으로 삼았던 이교도들은 로마 제국에 살면서 다신교를 믿었던 사람들이다. 바울은 한 지역에 공동체를 세운 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때로는 좋은 소식도 들려왔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바울이 세운 공동체의 멤버들 가운데 일부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었는데, 이들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전하곤 했다. '정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단이 있다'는 역사신학적 해석은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다. 바울은 이런 이단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단호한 의지를 담은 편지를 공동체에 보낸 것이다.

 

◇바울의 첫번째 편지=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의 첫번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주후 49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지 불과 15년 후이며, 그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가 이 땅에 출현하기 약 20년 전이다. 바울은 그 편지를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주라"(살전 5:26∼27)

 

바울은 이 편지를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든 교인에게 읽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민경식 박사는 저서 '성경 왜곡의 역사'에서 "이 말 속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권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부분은 바울은 '성서를 집필하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그들에게 편지를 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신구약 성서의 기록에 동참했던 거의 모든 기자들에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바울의 편지는 처음부터 여러 공동체나 교회에서 앞다퉈 회람되곤 했다. 이 편지는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던 각각의 교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신앙과 예배의식을 통일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발생하는 이단 문제를 비롯, 제사 문제 등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기에 교인들은 모일 때마다 그 편지를 큰 소리로 낭독한 것이다.

 

마침내 바울의 편지 중 많은 편지는 성서의 권위를 획득하게 됐다.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13편의 편지가 신약성서에 포함된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꽤 많은 편지들이 포함돼 있다. 공동체, 예를 들면 고린도인들이나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그것이다. 또한 빌레몬 개인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도 있다.

 

바울의 경우 신약성서에 포함돼 있는 편지들보다 훨씬 더 많은 편지들을 썼을 것으로 민 박사는 '성경 왜곡의 역사'에서 주장하고 있다. 민 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이 성서에 등장한다. 지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편지들을 바울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린도전서 5장 9절에서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고린도전서를 쓰기에 앞서 보내진 편지를 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바울에게 보낸 편지(고전 7:1)와 바울의 적대자들이 보낸 편지(고후 3:1)도 있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 문서로서 복음서들=사실 신약성서 27권의 책이 정경으로 확정되기 전, 초기 기독교인들이 만들고 유포하고 읽고 따랐던 문학 양식은 편지 말고도 다양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곁을 떠난 예수를 '주'라 부르면서 그의 생애와 교훈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 부활 등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다양한 복음서들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빌립이 썼다고 하는 빌립 복음서, 예수의 동생 유다 도마가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도마 복음서, 일종의 여성 추종자였던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가 그것들이다. 특히 이런 복음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유다복음도 당시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압도적인 지지와 인기를 누렸다. 유다복음에 따르면 가롯 유다의 예수 배반이 사실 인류 구원이라는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와 유다가 모의한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예수의 어록집 Q자료=그런데 이런 복음서들은 정경으로 낙착된 4복음서의 기자들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참고 자료가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의 기자는 이전에 '많은' 자료들을 참고해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엮었다(눅 1:1∼2). 물론 누가복음의 기자가 참고한 자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학자들은 이 자료를 'Q자료'라 부른다. Q자료는 주로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일종의 '어록집'이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두 기자는 이 자료를 활용, 자신의 복음서에 편집해 실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의 원본은 왜 단 한 편도 남아 있지 않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한 곳도 아닌 여러 공동체, 그것도 여러 교인들로부터 회람되면서 닳고 닳아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본마저도 극히 일부만 남아있을 뿐이다. 초기 기독교 문서들은 정경화의 대열에서 생명의 움을 틔우기 위해 회람·배포되고 있었다.

 

남병곤 선임기자 nambgon@kmib·co·kr

 

도움말 주신 분들 △김근주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 △김상근 교수(연세대) △김진섭 교수(백석대) △김회권 교수(숭실대) △민경식 박사(세계성서공회연합회 명예 번역 자문위원) △신현우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

 

 

출처 : 예.아 -YEAH- 그 환한 빛
글쓴이 : 예아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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