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야기 신학 -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 신성종 목사
1. 마태복음
1)마태복음의 구조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의 교량적 역할을 하는 책이다.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역사적 순서 때문이 아니라, 마태복음이 구약과 신약의 교량적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적 순서를 말한다면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고, 마가복음보다는 바울서신이 먼저 기록되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구약의 아브라함에게 주신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는 예언이나,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모르고서는 마태의 저작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마태복음을 보면 구조나 용어나 내용이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어거스틴은 계시록 4장 7절에 나오는 네 생물이 마태복음(사자 복음), 마가복음(송아지 복음), 누가복음(인자 복음), 요한복음(독수리 복음)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계시록의 네 생물은 천사들을 의미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사복음서의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의 구조에서 특징적인 것은 예수님의 설교를 다섯 뭉치로 묶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5∼7장에는 산상설교, 10장에는 제자파송장, 13장에는 비유장, 18장에는 교회의 훈련장, 24∼25장에는 종말론이 있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구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이 모세의 오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면서 모세가 오경을 쓴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도 다섯 묶음의 설교를 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그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모습이다. 마태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그 메시아이며 다윗에게 언약한 바로 그 왕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족보에서 시작하는 것은 왕에게는 족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족보는 빠진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4대씩 족보를 묶고 있는 점인데, 이것은 히브리어의 다윗이란 글자가 숫자로 계산하면 14이기 때문이다.
2)왕에 대한 소개
왕은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는다. “임금님 행차하시오” 하며 환관이 소리를 질러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3:11∼12) 두번째 예수님의 소개는 그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다. 3장 17절에 보면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란 말은 사복음서에 세번 나오는데, 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시점에서였다. 여기 나오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셨을 때(17:5)이며, 세번째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요 12:28)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란 말인데, 이것은 시편 2편 7절에서 인용한 구절로서 이것은 예수님이 왕이란 뜻이다. 다른 하나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 중에 하나인 42장 1절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종이 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세상의 왕과 달리 그는 종이신 왕이란 뜻이다. 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3대시험은 그가 참 왕이심을 증명해주고, 시험에 실패한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는 달리 제2의 아담인 예수님은 승리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마태복음의 3대시험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시험과 그 순서가 다르다. 두번째와 세번째가 바뀌어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심리적 순서로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시간적 순서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차이점을 중심으로 신약학에서는 편집사 비판(redaction criticism)이란 학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복음서에는 같은 사실을 앞과 뒤, 위에서 찍은 사진처럼 강조점이 다른 것이다.
3)산상설교의 현대적 의미(마 5∼7장)
산상설교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감탄하는 교훈이다. 간디는 이 산상설교만 있으면 다른 것이 없어도 기독교는 설 수 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신약성경의 구조이다. 신약성경은 팔복에서 시작하여 칠복(계시록)에서 끝나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팔복(마 5:1∼12)은 산상설교의 서론이다. 그러나 이 팔복을 좀더 세밀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한 것이다. 다음은 세상에서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소금과 빛의 은유(5:16)로 말씀하셨다. 17절에서부터는 하늘나라의 새 법을 십계명과 비교하면서 어떻게 다른가를 구별하셨다. 새 법의 결론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되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을 말씀하고 있다. 6장에서는 당시 신앙생활의 3가지 사역인 구제, 기도, 금식을 말씀하시면서 유명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그 후에 염려(anxiety)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7가지로 지적한다. 첫째로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필요한 다른 것도 주실 것이며, 둘째로염려는 오늘을 위한 노력을 방해한다. 셋째로 염려는 해만 되며, 넷째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깊은 관심을 가진다. 다섯째로 염려는 신앙부족의 결과이며, 여섯째로 우선순위를 바로 하면 해결되고, 일곱째로 한번에 하루씩 살면 해결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먼저 해야 할 것 3가지를 말씀했다. 첫째,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5:23∼24). 둘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 셋째, 남의 눈속에 있는 티만 보지 말고 먼저 내 눈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7:3∼5)고 하셨다. 7장에서는 판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남을 비판하는 척도로 우리도 비판을 받기 때문에 먼저 내 결함부터 해결해야 한다. 7장 12절은 아이삭 와트에 의해 황금률이란 이름이 붙여진 구절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4)왕으로서의 권능(8∼11장)
8장에서 11장까지에는 10가지 이적들과 이와 관련된 사건으로 되어 있다. 10가지 이적은 (1)한센병자를 깨끗케 하신 일, (2)백부장의 종을 깨끗케 하신 일, (3)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일, (4)바다를 잔잔케 하신 일, (5)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일, (6)중풍병자를 고치신 일, (7)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일, (8)혈루증 환자를 고치신 일, (9)소경과 벙어리를 고치신 일, (10)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일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적을 일으키셨는가? 적어도 5가지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환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다. 셋째는 주님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넷째는 주님이 왕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이고, 다섯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이사야서(61:1∼2)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이런 이적들이 일어난다고 예언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는 이 구절을 4장 18∼19절에 인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병 고친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갖기 쉬운 것은 모든 병은 다 귀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마태복음 4장 24절에 보면 귀신 들린 자와 간질병에 걸린 자를 구별하고 있고, 또 귀신들린 자와 중풍병자를 구별하고 있으며, 귀신들린 자와 온갖 병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병은 다 귀신들린 것이란 주장은 잘못이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모든 문제를 다 마귀의 역사로 좁게 해석하는 것도 문제이다. 마귀의 역사는 다양하여 졸음까지도 갖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10장의 제자 파송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28장 19절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10장을 말씀하실 때에는 아직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지도 않았고, 또 제자들이 성령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잠정적 명령이지 영원한 명령은 아니다.
랍비로서 예수님의 모습은 마태복음 13장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바로 비유의 사용에서 볼 수 있다. 비유를 흔히 하늘의 진리를 세상의 이야기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비유에는 이야기 외에 잠언,은유,예화,알레고리도 있기 때문이다.
13장의 비유에는 적어도 7개(51∼52절을 비유로 취급할 수도 있기 때문)의 비유가 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물론 하늘의 진리를 쉽게 풀어주기 위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사역을 변호하기 위해서 하신 것도 있고 심지어 마가복음 4장 12절의 말씀처럼(마 13:11) 은폐의 수단으로 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비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놀랍게도 예수님의 비유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은 1888년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예수님의 비유를 알레고리(우화)적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다가 1888년 독일의 율리커의 예수의 비유연구(2권)에 와서야 비유는 여러가지를 찾아서는 안 되고 한가지 핵심을 찾아야 한다는 원리를 발견했다. 그러다가 1936년 다드의 천국의 비유들을 통해 비유해석에서 당시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두번째 원리를 발견했다.
그러면 천국이란 무엇인가? 가장 작게는 예수님이고, 다음은 하나님의 통치이며, 종말론적으로는 변화된 이 세상과 함께 아직은 감추어져 있는 그 장소가 천국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비유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려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천국은 현재적으로 실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님을 영접할 때에 천국이 임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주님의 초림과 함께 이미 임했으나 그의 재림때 완성된다. 따라서 천국은 장소적으로는 아직 임하지 않은 상태이나 현재적으로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천국은 감추어 있는 보화와 같아 그것을 발견한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판 상인처럼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6)마태복음의 종말론
흔히 이 부분을 감람산에서의 설교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환난이 미래에 교회가 당면할 일을 언급한 것인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인지, 아니면 다니엘이 예언한 70주간의 종말론적 사건을 언급한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모든 일전에”라고 언급함으로써 종말 이전 교회시대에 일어날 일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단순히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된 사건들의 일부는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의 예언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니엘서(9:26∼7)나 계시록에 언급된 종말론의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4장 2절 말씀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성취된 예언이다. 3절 이하를 보면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종말에 있을 징조를 물을 때 예수님은 네 가지 징조를 말씀했다. 첫째는 거짓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둘째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셋째는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넷째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솔직히 지금 이 네 가지의 예언은 다 성취되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다음 다른 한 가지의 조건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택함받은 모든 백성의 구원이 있기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24장 15∼28절에는 환난에 대한 첨가적 예언이 나온다. 15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때에 이미 성취된 예언이다. 그러나 많은 성도는 이 구절을 주후 70년의 사건으로 생각하고 그 무렵에 예루살렘을 떠나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구하기도 하였다.
24장 29절을 보면 인자가 올 때에 천체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24장에서 중요한 구절은 32절의 말씀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과연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렘 24, 욜 1:6∼7, 호 9:10)에 보면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됐다. 따라서 이 구절은 1948년 5월14일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을 의미하며, 그 때가 되면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알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42∼43절은 종말에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결론적 권면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때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 함이니라” 25장은 24장에서 말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비유로 권면하고 있다. 먼저 열 처녀의 비유가 있고, 다음은 달란트 비유가 나오고, 끝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온다. 비유는 그 삶의 정황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식을 일반적으로 10대 중반에 했다. 결혼식은 밤에 행했으며, 들러리는 10명씩 두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들러리들이 가진 등불은 대단히 중요했다. 불이 꺼진다든지 기름이 떨어지면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는 이 비유를 알레고리컬(우의적)하게 해석했다. 그래서 신랑은 예수님, 열 처녀는 교회, 기름은 성령, 등은 선한 행위로 해석했다. 문제는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삶의 정황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핵심만을 찾는 것이 옳다. 열 처녀 비유의 핵심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주님은 갑자기 오시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주님의 재림이란 교훈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주님을 섬기는데 바로 활용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우리의 행함에 따라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한 것이다.
2. 마가복음
1)마가복음의 특징
신약성경에는 4개 복음서가 있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요, 바울과 함께 선교지에 갔다가 중간에 포기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일로 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따로 선교를 하게 된다. 마가복음에 보면 마가는 예수님이 잡혀갈 때 벌거벗고 있다가 로마 병정들이 잡으러 오자 벌거벗은 채 도망친 사람이다. 마가복음은 종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도 없다. 마가복음의 특징은 증인으로서의 생생하고 간단명료한 기록이 눈에 띄고, ‘그리고’ ‘즉시’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험에 관한 기록도 세 가지가 자세하지 않게 2절로(1:12∼13)로 요약돼 있다. 마가복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9∼20절의 말씀이 원문에 있느냐 여부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사본학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원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사본이라야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기록된 가죽 성경뿐이고, 대부분은 파피루스(종이) 사본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다 마모되어 온전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마가복음 16장 9∼20절의 말씀은 고대 사본과 대부분의 사본에는 없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볼 때 9∼20절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성경에 이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13절과 14절의 “역시 믿지 아니 하니라” “믿지 아니 함일러라”이다. 제자들까지도 믿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15절 이하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 나온다. 15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니며 전파하라는 말씀이다. 17절 이하에는 믿는 자들에게 다섯 가지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첫째는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 둘째는 새 방언을 말한다. 셋째는 뱀을 맨손으로 잡는다. 넷째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 다섯째는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치유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이것이 초대교회적 현상으로만 생각했으나 중국에서 선교할 때 이런 기적들을 체험했다.
3. 누가복음
1)누가복음의 특징
누가복음은 탈유대적인 책이다. 범세계적이란 말이다. 사복음서 중에서 제일 긴 책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마치 상, 하의 책처럼 서로 연결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천상사역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함께 다루어졌다. 누가는 시리아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바울의 의사로도 활동을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본래 데오빌로의 노예였으나 총독이 죽게 되었을 때 살려줌으로써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그 후에 주님의 70인 제자 중에 하나가 되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데오빌로에게 2권을 헌정하였다고 한다. 누가복음은 특별히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복음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선한 사마리아인(10:33), 세리(18:13), 탕자(15:11∼21), 삭개오(19:2), 십자가상의 강도(23:42), 여인(1∼2장) 나인성 과부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 누가복음에는 많은 시가 나오는데 성모 마리아의 송가(1:46∼55), 사가랴의 노래(1:68∼79), 천사의 노래(2:8∼14) 등이 바로 그것이다.
누가는 또한 역사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역사를 셋으로 분류하여 다루고 있다. 첫째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세례 요한까지, 둘째는 예수님의 지상사역, 셋째는 주님의 승천부터 종말까지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누가가 본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한 사람이시다.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랑으로 보았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일명 인자복음이라고도 부른다. 대상은 주로 헬라인들이다.
누가복음의 구조를 보면 예수님의 활동을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9장 31절에 보면 수난에 대한 첫번째 예고 후에 변화 산에서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세” 이 ‘별세’란 말을 중심으로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학이 나온다. 본래 별세란 말은 exodos(출애굽이란 뜻)란 단어인데 이것은 누가가 예수님의 죽음을 구약의 출애굽과 비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헬라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누가는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가지신 완전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헬라 사람들의 목표가 완전한 사람의 추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예수님이 나이가 30세가 될 때까지 나사렛에서 이름 없이 계셨다는 점이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께서 30세 때부터 그의 사역을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민수기 4장 3절에 그 해답이 나온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제사장이 될 사람들을 레위 자손 중에서 뽑되 30세 이상으로 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따라서 인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30세에 그의 사역을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30세였고, 다윗이 유다를 통치하기 시작한 것도 30세였다. 이것을 보면 나이 30이란 유대 문화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지시하시는 30세까지 기다렸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 누가복음만큼 자세히 기록한 복음서는 없다. 2장 1절에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아우구스투스의 호적령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것은 국세 조사를 위해서 주전 7년에 시작하였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헤롯이 그의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베들레헴의 2세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 헤롯의 죽은 해가 주전 4년이므로 오늘날의 서기는 약 4년간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목자들이 천사들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는 기록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율법에 무지한 자들이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다 죄인시하였다. 따라서 세리와 창녀와 목자들은 다 죄인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목자들에게 천사의 복음이 먼저 전해졌다는 것은 누가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24장을 보면 예수님의 승천으로 끝나고 있는데, 이것은 누가복음 하(下)인 사도행전에서 다시 이어진다.
4. 요한복음
1)요한복음의 특징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르고,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하는 것은 그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에는 유월절이 한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이 1년 조금 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세번 나오기 때문에 사역이 3년 정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거의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요한복음에는 유대와 갈릴리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는 그런 내용은 없고 ‘영생’을 중심으로 주로 예수님 자신과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차이점이 있다. 공관복음에는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이 그의 공생애 후반부에 나오지만, 요한복음에는 공생애의 전반부에 나온다. 물론 이것은 두번에 걸친 성전청결 사건이 있었다고 보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중요한 것은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와 탄생 기록, 시험, 변화산에서의 사건, 제자 임명, 비유, 승천과 지상명령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강조하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서론에 보면 예수님께서 로고스(Logos) 되심에서 시작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이적 혹은 기적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일곱 번의 표적이 나오고 일곱번의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의미)이 나오는데 그 뜻은 출애굽기 3장 14절의 구절과 연결이 된다. ‘나는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자’,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참 포도나무’라고 하면서, ‘에고 에이미’(I am)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마지막에는 공관복음에 없는 목양의 명령이 나온다(21:15∼23).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