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비판하는 천주교인에 대힌 답변

이아기 2005. 4. 21. 08:28

(먼저 한 천주교인이 쓴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관한 글을 읽으시고, 그 글에 대한 제 답변을 올렸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

 

 

교황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신문기사에 교황님과 천주교를 욕되게하는 댓글들이 너무나 많이 눈에 띄이고, 더우기 그중 많은 글들이 소위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에 의해 씌여진 것이 안타까와 이 글을 씁니다. 일부 사람들은 김수환 추기경님까지 대놓고 욕을 하고 몰매를 주려하고 있더군요. 단정적으로 천주교를 믿으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단단히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며, 교황님도 전혀 예외가 아니고 그분도 지옥에 간다고 말합디다.

 

저는 남들보다 성경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그야말로 남들이 보면 "날날이 신자"라고 불리워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최소한 기독교가 그런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는 아닌데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나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작금 한국 개신교의 배타적 성향은 여러사람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위험수위를 넘은 것이 사실 아닐까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말로 전도를 하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들으시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그분이 천당 티켓 팔라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까? 게다가 같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단지 믿음의 방식이 다르다고 단호히 단죄하고 지옥에 갈 사람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심판은 하느님만이 할 수 있다고 배우지 않았나요.

 

아무리 성경을 읽어보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 하여도 어떻게 기독교의 본질을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여덟글자로 요약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그건 "사랑"아니었던가요.

 

교회를 다니는 목적이 "살아서는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긴 그게 뭐가 어떠냐고 되묻는 사람도 많이 만나 봤습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을 팔아 먹고 살며 교회의 확장이 유일한 목적인 사람들이라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여덟글자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요약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교회의 확장을 사업의 확장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일테니까요. 표어로 따지자면야 얼마나 좋은 광고문구입니까.

 

이미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대놓고 "그 교회는 틀렸으니 우리 교회에 나와야 은혜가 많다"라고 전도하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같은 개신교끼리도 그러니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를 조금이라고 안다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할 다름입니다. 게다가 개신교는 과거 천주교회 안에서의 면죄부 판매등 많은 부정과 비리를 이유로 갈라져 나온 것인데 어떻게 개신교가 천당표를 파는 듯 행동할 수 있는 것인지요.

 

천주교 미사의 마지막 말은 항상 "이제 미사가 끝났으니 나가서 복음을 전합시다"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의무 중 하나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전도란 "아, 이 떡이 너무나 맛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야 하겠다"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야, 이 떡이 맛있다면 그렇게 알고 먹을 일이지 무슨 잔말이 많냐"라는 식의 전도는 바로 "조폭식" 전도이며, 말씀을 전하겠다는 전도가 아니라 자기 교회의 교세를 확장하겠다는 "사업"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  언제 예수님께서 "내말을 안듣는 사람들은 다 지옥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장 근접한 표현이 "내가 바로 길이다"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말을 하면 뭐하러 예수를 믿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천국이란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한 상태"이고 지옥이란 "하느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 정도로 해석하면 너무 무리일까요.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그 누구도 - 심지어는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 지옥 불구덩이에 빠진다는 생각도 하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만약 그런 곳이 있다하여도, 어떻게 일반 사람이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갈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오지에 사는 미개인도 하느님 영역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을 단죄하고 자신만이 신의 길을 안다고 떠벌이던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하셨는지 성경을 읽어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시의 종교자들과 피나는 투쟁끝에 결국 십자가에 달리신 역사적 배경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만이 신의 길을 알고 있는듯이 행동하는 자만심과 종교를 장사의 도구로 전락시킨 이 두가지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끝까지 싸우셨기 때문 아닌가요.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장 꺼리시던 바리새인들과 같이 행동하고 있으며, 많은 종교 지도자들도 과거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던 당시의 종교지도자 만큼 독선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면 심한 표현같습니까.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파는 사람들은 남을 지옥불로 협박하기 이전에 자신들을 돌아봐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누가 십일조 잘내서 돈 잘벌고 무병장수하게 하기위해 십자가에 달리신게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전도를 한다고 본질이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며, 천국 티켓은 그런 식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천당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한 후대 사람들이 전도를 더 간편하게 하기 위해 지어낸 개념이라고 저는 거의 확신합니다.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야, 이거 말로 다 전하기도 어렵지만 아무튼 예수를 믿으면 천당가고, 아니면 지옥간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저는 이런 저급한 협박용의 천당과 지옥 개념이 가장 반기독교적인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초자연적인 신의 개념은 기독교 바깥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앞세워 협박적으로 전도하고, 더 나아가 남의 사후의 문제를 다 아는 것 같이 남을 "심판하는"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바리새인 같은 행동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 세상은 아직도 자기네 종교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로 갈갈히 찢겨져 있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권의 반목, 유태교와 이슬람 (다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면서), 개신교와 천주교, 개신교와 불교,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가는 것이 개신교인들이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천주교에 대한 적개심과 우월감입니다.  그것이 과연 그 둘 다 기도끝에 공통적으로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님"의 뜻일까요?  그러한 적개심은 자신의 장사에 지장이 될까봐 일부 목사들이 지어낸 말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것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이 말 한마디로 약속하는 천국을 그들이 그리는대로 믿지도 않으며, 설사 그런 곳이 있다하여도 그곳이 조폭적 전도를 열심히 하고 타종교를 무시하며 남을 마구 단죄한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라면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이 천국이라면 저는 교황님이건 테레사 수녀님이건 거기에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저를 포함한 아무나 마음대로 단죄하시고 지옥으로 보내십시요. 하지만 그런 행동을 "예수님"의 이름을 빌어 하진 말길 바랍니다.

 

    2005.4.3   유혁상

 


(저의 답변- 위 유혁상씨 조선 블로그에 댓글로 올린 글)



 유혁상님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저는 개신교인으로서 그냥 읽고만 지나가면 여기에 댓글붙인 분들이 몰고가는 것처럼 개신교인은 정말 죽을 사람이요, 개신교는 잘 못된 신앙인 것 같아서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사실 인간의 도덕적 변화는 점진적이다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 기독교 특히 개신교인들도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성경의 말씀을 붙들고 성품의 변화를 이루어 가는 존재들임을 인정하신다면 모든 개신교인들이 잘 못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저나 유혁상씨나 성화(개신교에서는 그렇게 말합니다)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기에 오십보 백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인들이 천주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일반 불신자들과 똑같은 입장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는 입장이 틀리다고 하는데 사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적 진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교의 타종교에 대한 일반은총적인 면을 특별은총으로까지 확대시켜서 저들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식의 말씀해석은 잘 못이라고 봅니다.


 그럼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구원의 중심인가하는 것은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읽어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삼위일체교리라든지 등등의 복잡한 성경적 해석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천주교나 개신교나 같은 입장의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신적 존재까지 격상시킨 것은 그리고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누가복음1장 46절부터 계속되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찬양하는 부분(일명 ';마리아 찬양')을 보면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받아야 할 인간적 존재임을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2005/04/15 18:43:52


 ‘공격적인 전도(조폭식전도라고 하셨는데)’----어느 면에서는 우리 개신교인들이 조심하고 고쳐야 될 일입니다. 인정합니다. 한국개신교회가 120년 역사 가운데 빠른 성장을 보이다 보니 단점들이 많이 나타난 것을 회개합니다. 그러나 잘 못된 성도나 목사도 많지만 바른 목사나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성장이라는 이슈를 붙들고 내면적인 성장(성숙)보다는 외형적인 성장에 더 힘을 쏟고, 사회적인 책임도 다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마치 이 땅이 천국인 것처럼 예수믿으면 무병장수하고 , 물질적으로도 축복받고 잘 산다는 기복주의적인 신앙을 가르치고 그렇게 인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당 굿하는 것처럼 성령론을 잘못 체험하고 가르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큰 교회들이 자기 세를 불리는 것처럼 예배당을 더 크게 짓고 성도수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을 혼란시킨 잘 못된 성경해석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많은 문제점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부분에 자성을 하고 바른 진리 가운데 바른 말씀 가운데 나아가고자 회개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이 말씀을 떠나 잘 못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개혁이 있어야 된다고 부르짖고 그렇게 가르치고 말씀 따르는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최저 생계비도 없이 굶다가 굼식하면서 바른 목회하겠다고 세상의 좋은 직업 버리고 묵묵히 걸어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위의 알렉산더(반개신교 생각) 분이 지적하신 것처럼 그런 부분 솔직이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봐주십시오. 피해를 받았다면 용서하시고요. 서로서로 욕하지 말고 자기의 신앙을 확신하고 절대적으로 믿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참된 길이 아닐까요? 서로 욕하고 미워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서로 반목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2005/04/15 20:18:03


 면죄부라든지 연옥이라든지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든지<마리아 신적존재 격상 그래서 예수와 마리아를 동시에 믿음의 대상으로 만듬-마리아 무염시태(원죄없이 잉태했다는 것)-마리아평생동정녀론-마리아승천교리 등>, 그리고 성인숭배사상이라든지 교황이 베드로의 뒤를 잇게한 베드로 수제자설(나아가서 교황무오설까지-교황이 무오하다면 그의 입술의 말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고 자신이 신이라는 개념인데--) 등등은 성경적 가르침(개신교는 성경이 66권이고 천주교는 외경을 포함해 73권이다라고 하시겠지요? 성경이 서로서로 틀린부분이 어디있습니까? 외경에는 연옥을 이야기하는데 신구약 성경66권에는 그 연옥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개신교는 외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이 아닙니다. 교회를 존속하기 위한 성경을 떠난 인간의 상상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것은 천주교 교리 변천사를 잘 살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같은 천주교의 성경을 떠나고 성경을 왜곡시킴으로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천주교를 개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개혁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아시다시피 '오직 말씀으로(왜? 천주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기에)', '오직 믿음으로(천주교의 교리가 점점 이신칭의에서 멀어져 인간공로 중심으로 되었기에)', '오직 은혜로(천주교는 인간공로와 노력을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중요시 여겼기에)'를 부르짖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루터가 아니면(이미 그 전에도 개혁을 부르짖었던 몇 명의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못된 권위를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 주권과 섭리 가운데로 나아가길 바라고 그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에 응답하는 인간의 삶이 복된 삶이요, 바로 천국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실 오늘날 천주교는 그냥 그대로 그들의 교리(마리아 승천교리는 하물며 1950년 11월에 세워짐)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교리를 전통(전승)으로 붙들고 성경보다 더 권위있게 지키고 있기에 사실 개신교와는 다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천주교가 형님이고 개신교가 작은 집이다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다른 종교가 되어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천주교 안에서도 성경을 최고의 하나님의 권위로 믿고 받아들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다만 천주교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오라고요. 물론 그들도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겠지요. 그렇다고 지난 역사 속에 있었던 것처럼 서로 전쟁을 하는 종교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저는 전도라는 것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입술로 전도하고 삶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면서 전도하라고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말씀 대로 살면서(물론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어 다 말씀대로 살 지 못하는 연약성을 갖고 있지만) 누리는 천국의 기쁨, 감사, 행복(물질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행복, 감동,감격),찬양,사랑---이런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 그리고 보여주는 삶, 그것이 전도요,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무 행복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말하고 싶고 전하고 싶고 함께 누리고 싶어서 때론 사람에 따라 욕심을 부리기도 하겠죠---물론 자제해야 하지만. 2005/04/15 20:00:52


 개신교가 배타적이다, 독선적이다(사실은 절대적입니다)라고 하시는 부분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면 종교를 가질 필요가 없지요. 기독교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인간중심주의가 아니고 신본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신본주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바르게 알고 믿으면 가장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나 종교개혁자 칼빈도 그렇게 성경해석). 인간의 행복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그 사랑을 체험하면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눈 멀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다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처럼---그러나 사랑의 홍역에 빠지 않으면 그 감동과 그 마음과 그 행복을 모르는 것처럼(물론 인간과 인간의 사랑으로 비유할 수 없지만), 사랑을 체험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사랑하고 용서하고 관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개신교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여기서 이웃은 내가 아닌 남을 말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그러자면 남을 존중해야 되겠죠, 전도를 하더라도 존중하면서 내 것을 내놓고 더 행복하고 더 기쁘고 더 감사하고 그 행복 때문에 나를 죽일 수 있고(자기 부정), 고난도 즐겁게 받기를 원하고 또 받고---그렇게 내 보일 때 그 사람이 개신교가 정말 좋다고 느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체험되어진다면 따라 교회에 오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요----.우린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더 희생을 감수하려고 하겠지만요. 좋기 때문에요. 그런 것이 사랑이고 정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들(천주교 옹호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분명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16:3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4:12)', '내가 곧 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 등등 많은 성경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가 바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의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원자요, 메시야인 것을 믿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가 지을 죄의 댓가를 십자가 위에서 다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이를 믿는 자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인이 아니요, 의인으로 , 죄의 종 마귀의 종노릇하던 우리가 심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기업을 이을 자가 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인생은 이제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죄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다른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05/04/15 20:57:03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이타적 사랑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경 묵상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살 때만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문제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사람들도 시행착오를 거쳐서 점점 온전한 자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미 온전한 자요, 아직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자인 것입니다. 천국도 이미 우리에게 임했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그 분만이 절대자요, 영생이요. 생명인 것을 믿습니다. 그 분이 부활하신 것처럼 이미 우리는 영으로 거듭났으니 마지막 날에 육체도 썩을 것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체로 부활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절대적인 진리를 믿습니다. 구원은 다양한 길이 없습니다. 인격적인 수양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그러나 진리는 절대적입니다. 진리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곧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혹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연신학자들은 성경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성경과 진리에 대해서는 절대적이지만 사람을 바라볼 때는 사랑을 붙잡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고 다 죄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도 오십보 백보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용서받은 인생인데 어찌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오래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개신교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사랑해야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존중하면서도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며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소개해야 합니다. 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혹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구원의 문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들자면 사랑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거짓말만 하고 바른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아들을 사랑한다면 정말 사랑한다면 바른 길을 가르쳐주고 거짓말하면 안된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도 거짓말하면 우린 참고 기다려주어야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개신교를 황당한 것으로 바라보지 마시고 한국 민주화 과정과 발전 가운데 많은 헌신을 하고 지금도 경실련에서 조사한 바로는 가장 구제활동을 많이 크게하는 종교가 개신교입니다(죄송합니다). 천주교도 불교도 못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선전하지 않느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도록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성해야 되겠지요. 여러분들께 더욱 좋은 소릴 들을 때까지 아니 언제나 내 약함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2005/04/15 21:09:39

 

 

(다움의 블로그에서 제가 덧붙인 글)

 여기에 다신 한 말씀 더 붙입니다. 천주교의 타종교에 대한 이해(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표한)는 주로 칼 라너라는 천주교신학자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에서 유혁상씨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렇게 강조했는데-물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린 구원받았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받아들이고(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단하면) 이웃을 사랑하면 이미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예수님의 구원이 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예수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러니 타종교이든 무신론자이든 자신을 받아들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면 구원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서 2-3장의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성경해석입니다. 인간의 양심이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 율법이 되기는 했지만 양심이나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없이도 사랑을 하고 있다면 구원이 있다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없는 사랑을 참된 사랑일 수 없습니다.

 만일 타종교도 , 무신론자도 이미 그 양심에 따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면 구원이 있다고 보면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확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지 않고도 양심을 따라 사랑을 하면 되지 왜 오셨는가요? 왜 예수님은 그렇게 바리새인들과 당시 잘못된 교회지도자들과 대립했을까요? 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까요? 그냥 놔두면 되지----원숭이가 인간의 중간 변화 과정이요 존재라면 원숭이를 그냥 놔두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인간이 되는 것처럼(우린 진화론을 따르지 않지만)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도 구원이 예비적으로 있다면 그래서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지만 이미 그리스도인이나 마찬가지라면 전도는 왜 합니까?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그냥 놔두면 되지---그럼 점차 구원의 길로 나아갈텐데----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기살기로 예수 복음 외치고 복음 붙들고 살다가 순교당했을까요? 바울서신은 왜 정경으로 받아들여졌을까요? 바보입니까? 그냥 놔두면 원숭이가 사람되듯이 다 구원받을텐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희석시키는 사상이나 집단이 이단입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왜 이단으로 오해받는지 아시겠습니까? 고린도전서에 2장 7절을 보면 복음은 하늘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를 인간의 지혜로 가감해서는 안됩니다. 희석시키면 안됩니다. 십자가의 사랑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무신론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직접 읽어보시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교회로 나아가시어 상담하시길 바랍니다.  이글은 천주교의 교리와 개신교 교리를 성경적으로 비교한 것이기에 다소 논쟁적일 수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왜 이리 싸워'라고 오해하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들어오시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보면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 좋은 안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을 선택하려고 하시는 분들께서는 이글에만 의존하지 마시고 신구약성경 66권을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벤허’의 작가는 무신론자였는데 하도 전도하는 신자 친구의 말에 ‘신은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여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도서관을 다 뒤지고 다니면서 자료를 준비하다가 마지막으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먼저 내가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또 잘못을 찾아서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나가는 동안 성령님은 그 마음에 계시를 깨닫게 하셨고 오히려 그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어 우리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의 삶에도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예수 앞에 신앙고백을 하고 그 구원의 감격이 너무 대단해서 ‘벤허’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 영화가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전도 영화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직접 읽어보시고 무엇이든지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이해가 안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성경을 읽을 때 깨닫게 하시고 알여주십시오.’라는 마음으로 또 읽어보시면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그럼 행복한 인생이 열립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