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pd수첩과 황우석, 그리고 베트남전(스크랩한 글)

이아기 2005. 11. 25. 20:51
PD수첩과 황우석, 그리고 베트남전
[주장] 진실이냐 국익이냐, 기로에 선 한국인
텍스트만보기   서정표(jpseo21) 기자   
다니엘 엘즈버그. 그는 역적이었다. 국방부 연구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깊숙이 개입했던 그는 1971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통킹만 사건이 미국에 의해 조작됐음을 언론에 공개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의 음모와 조작을 담은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사에 뿌린 것이다.

그가 국가안보가 걸린 일급 비밀문서를 세상에 알린 이유는 하나였다.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미국의 야만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 국가 안보를 내세워 무기징역을 원하는 국방부와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한 언론사와의 팽팽한 법적 공방 끝에 결국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은 이 사건을 통해 언론의 자유와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최근 MBC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황우석 교수의 윤리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이유로 MBC는 졸지에 국익도 모르는 '파렴치한' 언론사로 낙인 찍혔다. 보도가 나간 후 MBC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된 네티즌들의 집단 사냥을 당하며 한때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일어났다. MBC가 주장한 언론의 진실은 그들의 광기 어린 폭력 앞에서 한낱 작은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 세포 연구는 가히 세계적이다. 그의 손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본 '영롱이'와 '스너피'는 복제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 이렇듯 그의 연구 성과는 충분히 인정하고 높이 살 일이다. 생명공학 분야가 척박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그의 연구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의 연구 과정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1964년 국제적인 윤리법인 헬싱키 선언에서도 난자의 불법 기증은 금지하고 있다. 작년부터 발효된 국내법, 생명윤리법도 마찬가지다. 황우석 교수측은 불법 난자 기증이 국내법이 발효되기 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엄연한 국제법이 존재하는 한 그 주장은 옹색하다.

이렇게 중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생명 공학 분야의 최고 성과라 해서 용인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과거에 우리는 국가주의, 또는 애국주의에 젖어 개인의 희생쯤은 당연시 여기는 세상에 살았다. 국가 앞에 개인의 인권이나 윤리는 무시됐다.

그리고 거기에는 언론의 무책임한 역할이 있었다. 정권의 하녀, 나팔수를 스스로 자임하며 오로지 국가편만 들었다. 감시와 견제, 비판이 언론의 임무임에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MBC의 보도는 그런 국가주의에 맞선 언론 본연의 기능을 되찾는 기회이자 전 국민의 인식의 전환이다.

MBC의 이번 보도는 '역적'의 행위로 오인 받을 수 있다. 당장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큰 차질을 빚게 됐다. 나라 밖의 시선도 예전만큼 곱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국익을 위한 것이고, 생명 분야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엄격한 국제적 윤리법을 국가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미국의 치욕을 세상에 낱낱이 공개한 다니엘 엘즈버그와 <뉴욕 타임스>의 행위는 국익에 반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용기는 언론의 자유와 진실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황우석 교수의 윤리 문제를 둘러싼 MBC의 보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