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 후기 호락논쟁의 교육사적 의의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의 교육사적 의의
정 덕 희(성균관대)
Ⅰ. 들어가는 말
회암 주희(晦庵 朱熹, 1130∼1200)에 의하여 집대성된 성리학은 교육과 숙명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것은 성리학 자신이 교육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사상적 강령을 대표하는 {중용}(中庸)의 첫머리는 교육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하늘이 명령한 것 그것을 '성'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 그것을 '도'라 하고, 그 '도'를 닦는 것 그것을 '교'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여기에서 보듯이, {중용}의 '하늘'은 '성'과 '도'를 거쳐 '교'로 수렴된다. 이러한
수렴방식은 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불교를 배척하는 성리학의 자연스러운 논리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교가 출세간(出世間)의 논리에
따라 시간성을 초월한 열반(涅槃)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성리학은 세간(世間)의 윤리로 얽혀있는 현실세계(This-worldliness)를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용}의 '하늘'은 '성'과 '도'를 매개로 세간의 '교' 속으로 용해되어 그것의
출세간적 공적성(空寂性)이 탈색되면서 동시에 현실세계에서 '교'를 수행하는 인간의 작위(作爲)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암은 {중용}의 첫머리를 집주(集注)하면서 인간사회에 법도를 세우는 것을 교육이라 하고, 예악형정으로 표현되는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교육에
귀속된다고 해설하였던 것이다(以爲法於天下, 則謂之敎, 若禮樂刑政之屬是也). 이로부터, 교육은 원천적으로 성리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이것은 거꾸로 일체의 성리학적 논의들이 교육적 시각으로부터 되물어져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
성리학과 교육의 관계를
전제로 할 때, 조선조 성리학도 역시 교육적 의미가 되물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되물음은 균형성을 현저히 상실하고 있다. 여기에서 균형성이란
호락논쟁(湖洛論爭)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조 성리학은 지난 500여년 동안 수많은 논변(論辯)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며, 그 가운데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호락논쟁은 논변의 규모나 질적 수준에서 볼 때 단연코 조선조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 개의
대논쟁(Great debate)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적 전개과정을 제대로 조망(眺望)하기 위해서는 사단칠정론과
호락논쟁을 반드시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지평에서 조선조 성리학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들은 두 개의 논쟁 가운데서
호락논쟁을 결락(缺落)시킴으로써 그 균형성을 현저히 상실하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조선조 성리학이 가지는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의의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연구들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에게서 발원(發源)되는 사단칠정에 대한 리기론적(理氣論的) 해석에 집중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조선 후기 200여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호락논쟁에 대해 교육적 의미를 되묻는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퇴계와 율곡이 조선조 성리학에서 차지하는 걸출한 위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조 성리학을 다루는 수많은 연구들이 퇴계와 율곡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퇴계와 율곡의 학문과 사상이 곧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적 전개과정을 전제로 할 때,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설은 심화되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퇴계와 율곡의
대립되는 학설을 각기 계승한 후대의 학자들은, 서로 다른 대척점(對蹠點)에 서서 호락논쟁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과
역비판 또는 절충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성리학설을 한층 더 심화하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조 성리학은 중국 송대(宋代)의
성리학을 뛰어넘는 독특한 성리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조 후기의 호락논쟁은 퇴계와 율곡뿐만
아니라 회암 주희의 성리학설에 내재된 난점과 불명료성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그것들을 재검토 내지는 재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인성론과 심성론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독특한 성리학적 패러다임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락논쟁은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적 전개과정에서 결코
결락될 수 없는 사상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 글은 호락논쟁이 가지는 교육사적 의의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논의의
성격상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호락논쟁에 관한 개별연구들이 많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상식적으로 논쟁의 전체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개별연구들이 충분히 종합될 수 있을 정도로 선행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호락논쟁에 관한 한
개별연구들은 그렇게 많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호락논쟁의 전체적 성격을 바탕으로 그것이 가지는
교육사적 의의를 되묻고자 하며, 그 시도의 근거를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에서 찾고자 한다. 해석학적 순환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 대한 이해의 내적인 공명(共鳴)은 닫혀진 원(圓)에서와 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개별적인 것은 전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개별적 대상이 가지는 의미는 전체의 통일성에 의존해 있는 가운데 정신의 객관화로서만 파악되며, 이러한
전체는 다시 자신의 개별화와의 순환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글은 전체적 의미의 종합적 결론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향후 이루어질 개별연구와 순환적인 관계에 있는 전체적 이해를 나름대로 모색함으로써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지평에서 호락논쟁에 관한 보다 높은 이해의
계기(Moment)를 제공하는데 그 진정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Ⅱ. 호락논쟁의 발단과 쟁점
호락논쟁은 호학(湖學)과 낙학(洛學)의 학파적 대립에서 비롯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들 학파의 연원(淵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외암 이간(巍巖 李柬, 1677∼1727)은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과 함께 동문 수학하였는데,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대해 서신을 왕복하여 논변(論辨)하다가 마침내 대립하기에 이르러 호학(湖學)과 낙학(洛學)이란 이름이 있게 되었다. 외암을 받드는 자를 낙학이라 하고 남당을 받드는 자를 호학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듯이, {조선왕조실록}은 낙학과 호학의 연원이 역사적 실제로서 각각 외암과 남당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들 학파의
명칭은, 논쟁의 지역적 대립구도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호락논쟁에서 외암을 지지한 사람들이 주로 낙하(洛下, 서울지역)의
학자들이어서 낙학이라고 하고, 남당을 지지한 사람들이 호중(湖中, 충청도 지역)에서 살았으므로 호학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위암
장지연(韋庵 張志淵, 1864∼1921)은 낙학과 호학의 학파적 연원을 {조선왕조실록}과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조선유교연원}에서
"호학은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 1641∼1721)에서 시작하여 남당이 계승하였고, 낙학은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에서
근원하여 이재(陶庵 李縡, 1680∼1746)가 지켰다"라고 하여, 그들 학파의 연원이 각각 남당과 외암에게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장지연은 같은 책의 다른 부분에서 호학과 낙학의 학문적 분화의 시원(始原)이 남당과 외암에게 있음을 언급했던 것으로 보아, 이러한 그의 설명은
매우 의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도는 다름 아닌 남당과 외암보다 한 세대 이전에 이미 호학과 낙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배태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이러한 장지연의 의도와 관련하여 최근의 한 연구는 호락논쟁에 대한 통시적(通時的) 관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문석윤은 자신의 학위논문에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으로도 불리는 호락논쟁 이전에 낙학과 호학이라는 독특한
학문적 성향이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즉, 낙학이 농암 김창엽을 필두로 주리적 경향의 인물성상동(人物性相同)을 정립시키고 있었다면
호학은 수암 권상하를 중심으로 인물성상이(人物性相異)라는 주기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연구들과 달리 문석윤의
견해에 근거하는 경우 호락논쟁에서 차지하는 외암과 남당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수암의 제자로서
외암은 호학의 내적 분화에 따라 낙학의 학문적 성향에 우연히 근접하였을 뿐이고 낙학을 주도할만한 위치에 설 수 없으며, 남당 역시 자신의 스승인
수암의 학문적 주장을 계승하여 호학의 입장을 대변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호락논쟁의 통시적 접근과 관련하여 앞으로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의 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호락논쟁의 전개과정에서 차지하는 남당과 외암의 역할이 주변부에
머무른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한산사(寒山寺)의 만남 이후 서로를 의식하면서 매우 치열한 논변을 거듭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이들은 호락논쟁의 이론적 쟁점들을 뚜렷이 부각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에 부각된 쟁점들은 이후 호락논쟁의 전체적
전개양태를 규정한다고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윤은 {조선유학사}에서 "호락 양론은 남당과 외암 두 사람의
논변에 의하여 현저하게 세상에 드러났다"라고 기술하였던 것이다.
확실히, 남당과 외암은 호락논쟁에서 제기되는 이론적 쟁점의 중심부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모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과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로
이어지는 율곡학파의 적전(嫡傳)인 수암 권상하의 제자들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모두 조선조 성리학의 계보상 율곡학파의 학통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율곡의 성리학설에 내재된 리(理)에 대한 주장에서 비롯된다. 율곡은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 운동과 발현을 기(氣)의 몫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 때에 파악된 기의 발현은 외적 소여(所與)가 아닌 기의 자발적
작용에 따른 이른바 '기자이'(機自爾)를 뜻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율곡의 리는 기의 발현에 올라타는 것으로 그 발현을 사지자(使之者)시키는
존재가 아님이 '기자이'를 통해 분명히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의 다양한 운동과 발현에도 불구하고 율곡의 리는 무작위와 무형상의
소이(所以)로서만 남게 된다. 그러나 '기자이'에 따른 율곡의 리는 조선조 성리학의 전개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의 제기를 받게 된다.
율곡의
주장과 같이, 리가 반드시 기의 발현에 올라타야만 한다면 그러한 리는 최소한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기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강조되면 될수록 성리학의 사유체계에서 기를 제어하고 지배할 수 있는 리의 권능은 그만큼 무기력하게 된다. 물론 율곡이 기에
대한 리의 주재(主宰)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조선조 성리학의 전개과정에서 리기호발(理氣互發)을 주장하는
퇴계와의 대척점(對蹠點)에서 리의 무작위를 상대적으로 강조하였음도 또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율곡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의 조리(條理)나 단서(端緖)처럼, 그의 리는 결국 기의 속성이나 내재적 법칙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우려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리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외암과 남당 사이에 치열한 논변을
촉발시키는 단서로 작용하게 된다.
외암은 율곡의 기본원칙들 가운데 하나인 리의 무작위를 부정하지 않는 범위에서 리의 권능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로서, 그는 어떻게든지 기와 섞이지 않는 온전한 리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암의 의도는
'기중지리'(氣中之理)의 리에 대한 해석에서 남당의 심각한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성리학에서 '성'(性)이란 인간과 '물'(物)에 내재(稟受)된
리를 가리키지만, 인간과 '물'은 형해(形骸)로서 기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따라, 인간과 '물'에 내재된 리는 '기중지리'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이 때의 리는 성리학의 대전제인 성즉리(性卽理)의 리와 어떻게 다른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남당은 기에 타재(墮在)된
리로서의 '성'은 이미 순수한 리와 다르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외암은 일원지리(一原之理)의 관점으로부터 '기중지리'의 리와 본연의 리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그 논리적 외연(外延)으로서 호락논쟁 최대의 이론적 쟁점인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과 미발심체본선유선악(未發心體本善有善惡)에 대한 논변으로 나아가게 된다.
Ⅲ. 인간형성에 대한 이해방식의 대립
호락논쟁에서 제기되는 인물성동이론은 표면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가 또는 다른가의 문제로 전개되지만, 그 궁극적 이면에는
인간형성을 둘러싼 이해방식의 대립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외암이 인간과 동물의 본성을 관통하는 보편적 원리로부터 인간형성의 이념성을
강조하였다면, 남당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가지는 차별성으로부터 연역되는 인간형성의 현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외암의
인물성구동(人物性俱同)과 남당의 인물성상이(人物性相異)에서 각각 제기되는 동시오상(同是五常)과 성삼층설(性三層說)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성범심동론(聖凡心同論)과 성범심이설(聖凡心異說)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인간형성에 대한 이해방식의 대립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외암의 이념적 인간형성관
외암은 호락논쟁에서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라는 이른바 인물성구동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해결해야 할 과제 하나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맹자}(孟子)의 생지위성(生之謂性)에 대한 회암 주희의 다음과 같은 주석이다: "리로써 말하면, 인의예지의 품부를 동물이 어찌 모두 얻을 수 있으리요?(以理言之, 則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哉?)". 여기에서 회암은 분명히 동물의 본성이 오상(五常)을 모두 얻지 못하고 치우치고(偏) 막힌(塞)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석은 논리의 필연적 귀결로서 '오상'을 오행수기지리(五行秀氣之理)로 생각하여 동물처럼 치우치고 막힌 오행(五行)은 인간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외암은 인물성구동의 입장에서 인간과 차이점을 드러내는 동물의 치우치고 막힌 '오상'을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해명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이르게 된다. 이로부터, 외암은 동시오상(同是五常)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게 된다.
바른 것도 오상이고 치우친 것도 오상이다. 통하는 것도 오상이고 막힌 것도 오상이다. 오상을 한 가지로 하지만(同是五常), 바르고 통하기 때문에 발용(發用)할 수 있는 것이고, 치우치고 막혔기 때문에 발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그 발용의 여부만을 보고서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뜻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인간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 함은 오행의 온전하고 순수함을 얻었다는 것이며, 동물이 치우침을 얻었다는 것은 오행의 치우치고 잡박(雜駁)함을 얻었었다는 것인데, 그 온전함과 치우침 사이에도 오행의 덕을 한 가지로 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외암은 비록 발용(發用)의 치우침과 막힘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물도 역시 인간과 같은 본성으로서 '오상'을 가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오상'을 리로 보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그는 일체(一切)의 존재자가 가지는 동일성과 차별성을
대분(大分)과 세분(細分), 단지(單指)와 겸지(兼指)라는 방법론으로 설명하게 된다.
외암의 동시오상의 방법론으로서 '대분'이란
무극(無極)과 이오(二五; 음양·오행)의 혼융무간(混融無間)에서 리와 기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 우주의 삼라만상은 모두 저마다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가로와 세로로 착종(錯綜)되어 얽히고 섞여서 그 단서가 만변(萬變)에 이르게 될 정도로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현상계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저마다의 모습을 가진다고 하여도 그것들은 '이오'가 유행(流行)하면서 '각각 편중된
곳에 나아가 질을 이룬 결과'(各就其偏重處成質)일 뿐이며, 그것은 결국 모든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오'의 리와 기를 같이 하는 이른바
동차이오지리기(同此二五之理氣)를 나타내게 된다. 이에 따라, 리와 기로 '대분'하여 리만을 '단지'한다면 그 리(理)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함께 가지는 동차일원(同此一原)으로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외암의 '세분'이란 기를 나누는 것으로서 그것은
정편통색(正便通塞)과 혼명강약(昏明强弱)의 변별을 나타내게 된다. 이에 따라, 기를 '세분'하여 '겸지'한다면 모든 우주의 삼라만상이 가지는
'정편통색'과 '혼명강약'이라는 발용의 차별성(所異者)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여 말한다면, 외암은 '대분'과 '단지'를 통하여
리의 동차일원을 확립하고 '오상'을 리로 봄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오상'이 같다는 동시오상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오상'의 발용(發用)에서 '정편통색'과 '혼명강약'에 의한 변별임을 '세분'과 '겸지'를 통하여 밝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외암은
{맹자}의 생지위성(生之謂性)에 대한 회암의 주석에서 제기된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오상'의 소유여부가 아니라 그 발용에 따른 기능의 문제로
귀결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귀결은 외암의 성리학에서 심성일치(心性一致)의 인간론과 맞물리면서 명덕(明德)을 마음의 본체로 하는
성범심동론(聖凡心同論)으로 이어지게 된다.
외암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다'라는 주장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리의 동차일원을 강조하여
마음의 본체인 '명덕'은 성인이건 범인이건 모두 같다라는 '성범심동론'을 주장한다. 즉, 그는 온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며, 그 마음의 본명지체(本明之體)는 혈육의 기(氣)로만 말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저 하늘이 만물에게 명(命)함에 있어서 오직 사람만이 이오(二五, 陰陽·五行)의 정통한 기를 부여받아 적감(寂感, 寂然不動·感而遂通)의 묘(妙)와 중화(中和)의 덕을 갖추고 있으며, 영명함이 만물 가운데서 가장 고귀하니, 이것이 명덕의 본체로서 곧 성인과 범부가 동일하게 얻은 것이다. 공자의 이른바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 마음'(操存舍亡之心), 맹자의 이른바 '인의예지의 마음', 주자의 이른바 '본래 불선이 없는 본심'(元無不善之本心)이라는 것들은 모두가 단지 이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성인(聖人)이건 범부(凡夫)이건 관계없이 이 마음 이외에 다른 마음은 없는 것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외암은 '명덕'을 본체로 하는 마음에 대하여 성인과 범인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성인과 범인의 차이는 현실에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그는 동시오상의 방법론의 연장선상에서 기의 발용(發用)에 따른 기능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명덕 이것은 성인과 범부가 같이 얻은 것이다. 그 부여(稟賦)받은 기에 구속되어 인욕(人欲)에 얽매여, 그 혼명(昏明)이 진실로 만가지로 고르지 못한 것이 있다. 다만, 그 허령불매한 본체는 성인과 범부가 처음부터 어찌 틈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즉, 외암은 성인과 범인으로 대별되는 마음의 차이를 기의 고르지 못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기에 구속되고 인욕의
얽매임에 따른 혼명(昏明)의 정도로서 곧 기의 발용의 차이로서 인간이 가지는 마음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외암은 성인의
'수지경명'(水止鏡明)의 경지도 결국 기의 발용에서 그 혼요(昏擾)함을 기능적으로 통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암은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일분(一分)의 혼요한 기를 통제한다면 누구라도 수지경명에 이르게 되어 이른바 기의 '박탁'(駁濁)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외암은 기의 발용에 따른 차별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동차일원(同此一原)으로서 리에 의한 동일성을 강조하며 현실세계에서 경험적으로 그 차별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성범심동론을 주장한다. 확실히, 이러한 주장은 일반적 상식으로 쉽게 재단(裁斷)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깊은 이념성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외암이 상정하는 이념성은 기에 의하여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마음의 본체인 '명덕'을 의미한다. 즉, 그는 마음의 본체인
'명덕'이 기가 섞인 잡박(雜駁)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기질로부터 독립하여 천하의 대본으로서 마음을 주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명덕'이 마음을 주재할 수 없다면, 기에 구속되고 인욕의 얽매인 상태를 궁극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약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외암은 청탁수박(淸濁粹駁)한 온갖 다양한 것들이 천하의 대본인 마음의 본체에 이르러서 지극히 순수하게 정립된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아무리 탁박(濁駁)하고 추악(醜惡)한 기질을 가진 인간일지라도 한 순간 마음을 돌려 '명덕'을 회복하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로부터, 외암은 기가 섞이지 않는 마음의 본체를 바탕으로 이념적 인간형성의 가능성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남당의 현실적 인간형성관
남당은 성리학의 대전제인 '성은 곧 리이다'(性卽理)에 대하여 미묘한 발언을 하고 있다. 즉, 그는 '리'라는 글자가 있는데도 또 다시 '성'이라는 글자 있는 것은 '성'과 '리'의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성은 곧 리가 아니다'로 해석될 수 있는 미묘한 발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당은 '성즉리'를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성리학의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남당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리는 본래 하나이다. 그러나 형기를 초월하여(超形氣) 말하는 것이 있고, 기질로 인하여 (因氣質)이름지은 것이 있고, 기질을 섞어(雜氣質) 말한 것이 있다. 형기를 초월하여 말하면, 곧 태극이라는 명칭이 이것으로 만물의 리가 동일하다. 기질로 인하여 이름지으면, 곧 건순오상의 이름이 이것으로 사람과 동물의 본성이 같지 않다. 기질을 섞어서 말하면, 곧 선악의 성이 이것으로 사람과 사람, 동물과 동물이 또한 같지 아니하다.
여기에서 보듯이, 남당은 리를 분수(分殊)하여 '초형기', '인기질', 그리고 '잡기질'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당이 말하는 형기(形氣)란 이목구체(耳目口體)와 같이 각각의 개체적 인간과 동물이 가지는 특수성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형기'를 초월(超越)하는 '초형기'는 특수성을 사상(捨象)시키고 유적(類的) 본질로서 드러나는 모든 인간과 동물의 보편성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초형기'의 리는 모든 인간과 동물에게 보편적인 태극(太極)이 되며, 이것에서 부여받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성즉리'로서 모두 같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기'를 초월하여 파악된 이념적 보편성이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가지는 현실적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 차별성은 '인기질'과 '잡기질'에서 드러나게 된다. 즉, 남당은 '인기질'로부터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본성의 고유한 차별성(人物之性不同)을, 그리고 '잡기질'로부터 인간과 인간, 동물과 동물의 개체적 차별성(人人物物不同)을 각각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리의 분수는 '초형기'를 통해 성리학의 대전제인 '성즉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기질'에 의하여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다르다'를 드러낼 수 있는 절묘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당은 '성'을 삼층적(三層的)으로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원진(元震)이 유심히 관찰하여 보니 성에는 삼층의 다름(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같은 본성이 있으며, 사람과 동물이 [서로] 같지는 않으나 사람들끼리는 모두 같은 본성이 있고, 사람과 사람이 모두 같지 아니한 본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성은 이와 같은 삼층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하나 하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보는 관점에 따라 이러한 삼층이 있을 뿐입니다.
위의 설명은 남당이 자신의 스승인 수암 권상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서 자신의 독창적 학설인 이른바 성삼층설을 밝힌 부분이다. 여기에 이르러 남당은 '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료하게 드러내게 된다. 즉, 기질과 관계된 분수된 리로서 '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초형기'로서 기질을 초월한 '성'은 리 그 자체이지 더 이상 '성'이라고 할 수 없으며, 오직 '인기질'로서 '형기'나 기질에 속에 있는 리만을 '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남당의 입장은 '성'을 순수한 리의 품수(稟受)로 보려는 전통적 성리학으로부터 언제든지 비판받을 여지가 있게 된다. 실제로 외암 이간은 '인기질'에 의한 '성'의 해석은 남당 자신의 독자적 주장이라고 비판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남당은 '인기질'에 대한 회암과 율곡의 고증(考證)을 예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선생께서는 인기질이라는 세 글자가 내 스스로 얻은 견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고증이 상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무릇 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질로 인하여(因氣質) 그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율곡 선생도 말하기를 "성이라는 것은 리기의 합으로 리가 기 가운데 있은 이후에 성이 된다. 만약 기 가운데 있지 않으면 마땅히 리라고 해야지 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나의 견해의 근본입니다.
이제 남당에게 있어서 '성'은 곧 리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성'은 '인기질'로부터 드러나는 것으로 리가 기질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성'에 대한 입장은 심성불이(心性不二)의 인간론과 맞물리면서 기질의 차이를 반영하는 성범심이설(聖凡心異說)로 이어지게 된다. 즉, 그는 '성'에 기질을 관계시키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도 차별성을 전제로 하는 기질을 개입시켜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가지는 청탁수박(淸濁粹駁)에 의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남당은 "내 마음과 성인의 마음이 다를 것이 없다면, 더 무엇을 배운다고 하겠는가"(吾之心卽聖人之心無異, 尙何學之爲哉者也)라고 반문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기질에는 … 청탁수박의 부제(不齊)함이 있다. 그 지극히 청(淸)하고 그 지극히 수(粹)한 것을 얻은 자는 성인(聖人)이 되고, 그 청수(淸粹)를 많이 그리고 탁박(濁駁)을 적게 얻은 자는 현인(賢人)이 되고, 그 탁박을 많이 그리고 청수를 적게 얻은 자는 중인(衆人)이 되고, 그 지극히 탁(濁)하고 그 지극히 박(駁)한 것을 얻은 자는 하우(下愚)가 된다. 그 사이에도 [청탁수박의] 다소(多少)로 분류할 수 있는 숫자는 유만부동(有萬不同)으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대개 이러한 네 등급이 있게 된다. 이것이 성(聖)·현(賢)·우(愚)·불초(不肖)로 나누어지는 까닭이다.
이렇듯 남당은 인간의 마음이 가지는 현실적 차별성을 기품의 부제(不齊)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범심이설'은 인간형성의 측면에서 좀더 해명되어야 할 부분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기질의 결정성에 관한 것이다. 만약 인간의 마음에 품수된 기질이 결정적이라고 한다면, 탁박(濁駁)한 기질을 품수한 인간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성리학의 수양론을 통한 인간형성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남당은 기품의 '부제'와 구분되는 또 다른 마음의 존재양태로서 명덕(明德)을 제시하게 된다. 즉, 그는 인간형성의 가능성으로서 '명덕'을 논의하면서 {대학혹문}(大學或問)의 주(註)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태어날 때 정(正)하고 통(通)한 기를 타고난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의 본성만이 가장 귀할 뿐만이 아니라, 방촌(方寸) 사이가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다. 대체로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며, 또한 사람이 요(堯)·순(舜)과 같은 [성인이] 되고 천지(天地)와 더불어 만물의 화육(化育)을 돕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곧 이른바 명덕인 것이다.
이와 같이 남당의 '명덕'은 요·순과 같이 천지만물의 화육에 동참할 수 있는 인간형성의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면 이러한 '명덕'은
'성범심이설'에서 제기되는 마음의 존재양태로서 기품의 '부제'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이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 남당은 '가리키는
바'(所指)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는 것으로 그 실질적 차이가 없다고 하면서 '쇠로 만든 거울'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명덕'이란
거울의 밝은 빛과 같다. 그 광명(光明)을 지적하여 말하면 광명에는 차이가 없다. 마음은 거울 자체와 같다. 오로지 거울만을 말하면, 거울은
만든 쇠의 정(精)함과 조잡함은 같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남당의 인간형성관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즉, 모든 거울이 '광명'을
가지듯이, '명덕'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으로 성범의 차이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거울을 닦아 그 '광명'을
드러내듯이, 모든 인간이 수양과 공부로서 자신을 닦게 된다면 기품의 '부제'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내재하는 '명덕'을 누구나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남당은 인간이 품수받은 기질의 결정성을 거부하고 그것의 후천적 변화를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천명하게 되는
것이다: "신체의 길고 짧음과 [얼굴의] 예쁘고 추함은 진실로 바뀔 수 없지만, 마음의 허명(虛明)에 이르러서는 가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남당은 자신의 '성삼층설' 가운데 하나인 '인기질'에 근거하여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다르다'라는 '인물성상이'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경험적 상식에 매우 부합되는 것으로 공허하게 본성을 논하는 이른바
현공성설(懸空性說)을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성리학의 대전제인 '성즉리'를 철저히 적용하여 본성에 기를 섞지 않고 순수히 리로만 다루게
된다면, 그것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성리학적 이념에 충실한 것이 될지는 모르나 공허한 리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불교의
심즉불(心卽佛)이라는 이론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연지심(實然之心)을 바탕으로 인간성의 수양과 공부라는 성리학 본래의
이념을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남당은 순수한 리인 '명덕'을 어디까지나 일신(一身)의 '형기'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마음의 존재양태인 '청탁수박'이라는 기품의 '부제'로 수렴시킨다. 다시 말하면 그는 '명덕'을 품수된 기질의 차이로서 탁박(濁駁)한
것을 청수(淸粹)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인간형성의 현실적 좌표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당은 중인(衆人)들이 '명덕'(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탁박'한 기질을 변화시키려는 극력(極力)의 수양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남당은 기품의
'부제'라는 마음의 차별적 존재양태를 바탕으로 현실적 인간형성의 가능성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