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부교회당에서 발표한 자료중에 한제호 목사님의 다윗의 역사 부분은 금번 서울 웨신 강당에서 구체적으로 발제, 발표합니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다윗의 생애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우리는 이날 발표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시가 희미한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을 통하여 다윗언약을 세우시고 작정하심의 뜻대로 인간의 역사를 계속하여 이끌고 가십니다. 8월23일 세미나를 통하여 다윗언약속에 담긴 2중적 계시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 실체(예수 그리스도)에 사실감 있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기대되는 바는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목회자의 설교가 구속사적인 종합적 유기적 해석 원리를 바탕으로 역사적 본문 해석이 석의 되어 짐으로써, 그리스도 예수 중심적인 복음적 설교가 온전히 시행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왕적권세로써 흥왕이 선포될 수 있도록 계기가 되는, 초석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재차 원하옵기는 윗글의 안내문과 같이 많이 많이 참석하셔서 성경의 총체적 계시관에 사로 잡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래글은 뉴스앤죠이에서 최재호기자가 쓴 글을 퍼온 글입니다.(keeper77 올림)
성경신학회, 한국교회 설교와기도 위기 경고 |
이광호 한제호 성기문 허주 박사 등 논문발표회서 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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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cj8412@newsnjoy.co.kr [조회수 : 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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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경신학회(회장 황창기 교수)가 주최한 제14차 논문발표회가 '성경신학과 목회'란 주제로 지난 8월 9일 대구 동부교회당(김서택 목사)에서 열렸다. 이번 발표자들은 한국교회의 성경적이지 못한 설교와 기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 관심을 모았다. 이날 논문발표회는 △ 기도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과 적용(이광호 박사) △ 예수님이 신자에게 주신 영생의 이해에 필요한 다윗의 역사(한제호 박사) △ 구약의 제의와 적용(성기문 교수) △ 성경신학의 사명과 과제(허주 박사) 등의 발제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아래는 이날 발제내용의 요약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현상과 세속화의 원인이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기도로 인해 한국교회는 비정상적인 교회 성장을 초래했고 교회의 세속화와 함께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도자의 성윤리문제, 부당한 재산문제, 교권적 파당문제 등 다양한 부정과 비리에 얼룩진 교회 가운데 여전히 새벽기도, 철야기도에 열중인 것을 볼 때 그러하다. 또 성도는 개별적인 자기의 풍요로운 삶이나 윤택한 생활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짐과 그 가운데 형성된 교회의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여야 한다. 즉 인간들이 기도의 내용을 정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청에 따른 하나님 중심의 기도여야 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자기의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인 양 불경한 생각을 하며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불신앙의 표현이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은 곧 "네 마음대로 기도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비평적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부활과 십자가에 달리신 신비로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발전들이 지적한대로 그것을 상당히 강화시킨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권 신학자들에 비해 독일신학자들은 매우 지혜로운 신학적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할 수 있다.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목사 등으로 대표되는 영어권 신학자들은 역사비평적 방법이 산출한 기독론적 결과들에 대해 오해를 하여 왔다. 반면 60년 이후 독일 현대기독론은 이 방법에 대한 바른 이해가 기독론적인 실증주의로 인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탁월한 예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교회의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 이야기들에서 인간 주인공들의 믿음과 윤리와 슬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인간중심의 설교를 하지 말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정표와 다리로써 다윗사를 중요하셨던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 설교를 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다윗처럼 천년 후에 이뤄질 복음만을 말하고 칼빈처럼 5분이면 그 정당성이 드러나는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예배의 국면을 힐(Hill)의 견해를 따르면 일곱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예배란 영적인 물음이다. 개인의 욕망이나 의도를 간구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의중을 문의하는 것이다.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기도와 예배가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예배란 경건한 복종이다. 또 충성된 섬김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섬김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예배란 개인적인 사역이다. 예배는 또 진정한 겸손이다. 예배하는 자의 겸손과 무용성을 깨닫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것에 대한 공적인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배는 또 기도 가운데 부복하는 것이다. 부복은 하나님 앞에서 최대한의 겸손의 상징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배자의 친밀한 관계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시편40편을 통해 특정한 제사보다는 순종적인 신뢰가 하나님의 요구였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신뢰가 있는 제사의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다. 시편 50편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람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며 제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51편에서는 상한 심령의 제사와 상하고 통회하는 번제를 기뻐하신다고 말한다. 감사란 감사제물이 아니며 참된 회개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구약이 말하는 신자의 바른 언행에 대한 명령들의 실천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를 성도에 대한 거룩함의 요구로 이해했던 칼빈의 경우처럼,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나 가족, 친구, 이웃에게까지 언행으로 정직하고 선하며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며 이것들이 구원받은 자의 외적 표징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신학과 목회가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 최근 각자의 전공영역에서 '신학의 파편화'가 이전보다 더 가속화 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그 심각성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될 주제이다. 끝으로 개혁주의 성경신학은 종말론적이며 선교적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성경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신학의 내일은 이같은 사명을 가지고 개혁주의(복음주의)신앙을 고백하는 신학자, 목회자, 모든 성도들이 동참해야 하는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연합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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