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묵상 10
빌립보서 3:1-9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찬송가 400장
어제는 천주교 평화방송을 들었는데 한 신부님이 청취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코너였다. 천국을 이야기하는데 인격완성의 모습으로 천국을 정의하고 있다.그러면서 천국은 꼭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과 더불어 인격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천국이다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상담자의 진의를 제가 바로 알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천국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누릴 수 있고, 구원과 천국이 인격완성의 의미도 있지만 영원히 우리가 가야할 궁극적인 천국도 분명히 있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성경적 바른 증가가 아닐까?(요14:1-3,행1:9-11, 계21:7 등등 참조) 지옥도 인격완성에서 실패하는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럼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인격완성,사랑과 평화---등등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닌 것들은 이 땅에 매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많이 이야기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인격완성을 외치는 천주교 교리는 마치 넉넉하고 포용심이 많과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옹졸하고 비타협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며 좁은 마음인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또 다른 우상으로 보는 자유주의적, 자연주의적 신학의 포용성을 우리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타협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말씀적이고 그리스도적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에 더 소망두기를 바라고 걸어갑니다.
바울신학의 근간이 바로 '이신득의(以信得義-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진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롬1:17))'교리이다.
빌립보교회에 디모데라는 말씀 위에 굳게 선 사역자를 빨리 보내게 된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2절에 '개, 행악자, 손할례당'이라고 하는 유대율법주의자들의 영향으로부터 교회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저들은 예수를 믿은 것만으로는 안되고 믿음에 율법의 행위를 더하여야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왜 조금도 가입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이 희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에 구원에 우리 인간의 선한 행위가 들어가게 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완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와 갈리디아서가 말씀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간의 선한 행위가 구원받는 조건이 된다면 성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부족함이 있을까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외친 것은 그래서 바로 '이신칭의, 이신득의'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 유대율법주의자였습니다(4-6절).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주를 은혜로 만나고 참된 구원을 받았을 때 그가 자랑하던 그 모든 것(율법)이 오히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렸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9절). 왜 그랬을까요? 그가 그토록 연구하고 붙들던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었음을 깨닫았던 것입니다. 바울의 구원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선물인 것입니다. 어떤 세대나 무리나 세력들도 이 하나님의 지혜(고전1장)를 파할 수 없고 능가할 수 없습니다. 행위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은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나 구원의 담보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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